허큘리스 카드만 해도 미려하다고 느끼던 학부시절.
CGA나 VGA에 환호했고 TeX이란 markup 언어로 공학수식이 들어간 논문을 만들던 그런 시절.
아래아한글이라는 WYSIWYG 에디터가 온통 PC 사용자를 들뜨게 만들고, 삼국지나 대항해시대 같은 게임의 세계관에 홀딱 빠져지내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석사과정이 되어 lab에 들어갔더니, 조그마한 박스같은 물건이 있는데 걸작중에 걸작이었다.
컴퓨터 살때 아주머니가 불법복사해서 준 윈도우즈2.0을 깔았다가 욕만 바가지로 하고 지운 기억이 있는데, 완벽하게 직관적인 GUI가 거기 있었다. WYSIWYG이라는 현학적 개념을 끌어올 필요도 없이 화면에서 보는 그대로 출판인쇄를 하듯 완벽한 결과가 나와 눈이 휘둥그레 해지는 그런 컴퓨터의 이름은 매킨토시라고 했다.
당시 FORTRAN은 내가 살던 세계의 공용언어였고, 나와 몇몇 친구들은 당시 새로 각광을 받던 C라는 언어로 공학해석프로그램을 작성하여 논문을 썼다. 랩이란 곳이 도제 시스템이라고는 하지만, 워낙 가족같이 친밀해서 야생마같이 제멋대로인 후배들을 나무라지 않고, 도리어 나이먹어 새로 C언어를 배워가며 나의 코어를 이용하여 박사학위를 진행한 마음 넉넉한 나의 사수 선배도 있었다.
반면 기인열사같은 한 선배는 C언어는 엔지니어나 쓰는 언어라고 일축하며 Pascal만이 예술가의 언어라고 틈만 나면 주입을 했고 (물론 그는 FORTRAN으로 학위를 진행했던 것 같다), 나는 Pascal은 실용적이지 않고 겉치레만 요란할뿐더러 타이핑도 많아서 난 그런 장식예술 안할란다고 볼멘 답을 했었다. 어쩌면 나의 mother tongue인 C를 나무라는 그 선배가 야속해서 별 사소한 것을 핑계로 서로의 언어를 흠잡기에 몰두하기도 했었던 듯 하다.
CCH라는 별명의 그 선배는 말로만 투덜댔지 실제로는 컴퓨터와 관련된 넓은 세상을 보여주었었다.
당시 PC통신은 있었지만, 인터넷이란 것은 일반인이 개념조차 모르던 시절이었다.
운이 좋게도 나의 학교를 비롯한 국내 몇개 대학과 한국통신에서 시험적으로 망을 운영하고 있었고 Kids란 놀이터에서 밤새 열심히도 놀았다.
채팅으로 낯모르는 사람과 속깊은 이야기도 나누었었고, 이우혁의 퇴마록이 올라오는 것을 기다려 밤새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특히 우중충한 건물에서 아침까지 퇴마록을 읽다보면 마치 내 뒤에서 누군가가 쳐다보는 느낌마저 들었다.
당시 매킨토시 시스템을 해킹하는 재미로 살던 이 선배는 telnet과 gopher, ftp 등의 이름도 외우기 힘든 프로그램을 선보였고, 네트워크 해킹의 세상에 대해 신밧드의 모험같은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해주었었다.
이 형과 죽이 잘맞던 동년배의 다른 선배는 당시 한국 맥유저의 회장을 맡고 있었고, 그들이 만나면 듀엣으로 매킨토시와 워즈니악에 대해 온갖 신비로운 전설들이 넘쳐나던 날들이었다.
그리고, 지뢰찾기가 무척 재미있긴 하지만 너무 빨리 끝나는 것이 아쉬워서 재능있는 한 친구가 폭탄 1000개짜리 화면을 꽉채우는 지뢰찾기를 만들어서 우리들만의 프로그램으로 순위의 앞으로 가기 위해 경쟁을 하기도 했고, 페르시아 왕자와 소코반를 깨기 위해 모두 머리를 모아 이런 저런 흰소리와 함께 껄껄거리기도 했던 날들이었다.
당시 50cm간격으로 모여있던 우리는 지금 방방곡곡, 세계 만방에 흩어져 있으니 간간히 바람에 들려오는 이야기에 물끄러미 근황이 궁금해진다.
-스티브 잡스에 관한 책을 읽다가 십수년전의 아름답던 날들이 생각나서 의미없이 옛이야기를 주절거리다.
나이먹는다는 것은 retrospective해짐을 의미하는가..?
CGA나 VGA에 환호했고 TeX이란 markup 언어로 공학수식이 들어간 논문을 만들던 그런 시절.
아래아한글이라는 WYSIWYG 에디터가 온통 PC 사용자를 들뜨게 만들고, 삼국지나 대항해시대 같은 게임의 세계관에 홀딱 빠져지내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석사과정이 되어 lab에 들어갔더니, 조그마한 박스같은 물건이 있는데 걸작중에 걸작이었다.
컴퓨터 살때 아주머니가 불법복사해서 준 윈도우즈2.0을 깔았다가 욕만 바가지로 하고 지운 기억이 있는데, 완벽하게 직관적인 GUI가 거기 있었다. WYSIWYG이라는 현학적 개념을 끌어올 필요도 없이 화면에서 보는 그대로 출판인쇄를 하듯 완벽한 결과가 나와 눈이 휘둥그레 해지는 그런 컴퓨터의 이름은 매킨토시라고 했다.
당시 FORTRAN은 내가 살던 세계의 공용언어였고, 나와 몇몇 친구들은 당시 새로 각광을 받던 C라는 언어로 공학해석프로그램을 작성하여 논문을 썼다. 랩이란 곳이 도제 시스템이라고는 하지만, 워낙 가족같이 친밀해서 야생마같이 제멋대로인 후배들을 나무라지 않고, 도리어 나이먹어 새로 C언어를 배워가며 나의 코어를 이용하여 박사학위를 진행한 마음 넉넉한 나의 사수 선배도 있었다.
반면 기인열사같은 한 선배는 C언어는 엔지니어나 쓰는 언어라고 일축하며 Pascal만이 예술가의 언어라고 틈만 나면 주입을 했고 (물론 그는 FORTRAN으로 학위를 진행했던 것 같다), 나는 Pascal은 실용적이지 않고 겉치레만 요란할뿐더러 타이핑도 많아서 난 그런 장식예술 안할란다고 볼멘 답을 했었다. 어쩌면 나의 mother tongue인 C를 나무라는 그 선배가 야속해서 별 사소한 것을 핑계로 서로의 언어를 흠잡기에 몰두하기도 했었던 듯 하다.
CCH라는 별명의 그 선배는 말로만 투덜댔지 실제로는 컴퓨터와 관련된 넓은 세상을 보여주었었다.
당시 PC통신은 있었지만, 인터넷이란 것은 일반인이 개념조차 모르던 시절이었다.
운이 좋게도 나의 학교를 비롯한 국내 몇개 대학과 한국통신에서 시험적으로 망을 운영하고 있었고 Kids란 놀이터에서 밤새 열심히도 놀았다.
채팅으로 낯모르는 사람과 속깊은 이야기도 나누었었고, 이우혁의 퇴마록이 올라오는 것을 기다려 밤새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특히 우중충한 건물에서 아침까지 퇴마록을 읽다보면 마치 내 뒤에서 누군가가 쳐다보는 느낌마저 들었다.
당시 매킨토시 시스템을 해킹하는 재미로 살던 이 선배는 telnet과 gopher, ftp 등의 이름도 외우기 힘든 프로그램을 선보였고, 네트워크 해킹의 세상에 대해 신밧드의 모험같은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해주었었다.
이 형과 죽이 잘맞던 동년배의 다른 선배는 당시 한국 맥유저의 회장을 맡고 있었고, 그들이 만나면 듀엣으로 매킨토시와 워즈니악에 대해 온갖 신비로운 전설들이 넘쳐나던 날들이었다.
그리고, 지뢰찾기가 무척 재미있긴 하지만 너무 빨리 끝나는 것이 아쉬워서 재능있는 한 친구가 폭탄 1000개짜리 화면을 꽉채우는 지뢰찾기를 만들어서 우리들만의 프로그램으로 순위의 앞으로 가기 위해 경쟁을 하기도 했고, 페르시아 왕자와 소코반를 깨기 위해 모두 머리를 모아 이런 저런 흰소리와 함께 껄껄거리기도 했던 날들이었다.
당시 50cm간격으로 모여있던 우리는 지금 방방곡곡, 세계 만방에 흩어져 있으니 간간히 바람에 들려오는 이야기에 물끄러미 근황이 궁금해진다.
-스티브 잡스에 관한 책을 읽다가 십수년전의 아름답던 날들이 생각나서 의미없이 옛이야기를 주절거리다.
나이먹는다는 것은 retrospective해짐을 의미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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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나우누리에 화면 꽉채우는 지뢰찾기가 떠서 재미있게 한 기억이 나는데 Inuit 님과 관계된 분이셨군요 -_-; 도대체 알면 알수록 신기합니다 우우....<!-- <homepage>http://szoony.wo.to</homepage> -->
Kimuring~♡ // 그게 같은 프로그램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네모가 회색이 아니고 온통 파란색이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