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의 노래

Culture 2004/04/12 20:12
김훈의 <칼의 노래>를 읽고, 그 문체와 사변에 단박에 매료되어 버렸지요.
<현의 노래>란 후속작이 나왔다는 소리에 무슨 내용인지 가리지도 않고 주말에 읽을 요량으로 주문을 해버렸습니다.

한주의 끝, 피곤이 쌓였는지 저녁 숟갈 놓자마자 기절하듯 잠에 빠졌다가 자정이 다되어 눈을 뜨곤 애인을 보듬듯 책을 손에 잡고 밤늦도록 읽었습니다.

다른 책이면 한두시간이면 읽을 분량과 내용이지만, 배가 고파 읽는 책이 아니고 곱씹는 맛에 읽는 책인지라 책장을 아쉽게 넘기며 찬찬히 문체를 즐기며 읽었습니다.
칼의 노래의 후속작이고 전작보다 짧은 시간에 씌어져 어떤 완성도를 기대한 것이 아니라 그저 김훈의 글을 읽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전작인 칼의 노래에서도 어렴풋이 느꼈던 것을 이번에 확실히 느낀것은 다른 작품은 몰라도, 노래 시리즈의 일관된 메시지는 "찰나의 미학"이 아닌가 합니다.

이순신은 등뒤의 임금이 그렇게 두렵고, 물앞의 왜구가 한없이 무서웠지만 그저 자신의 할 일을 하기 위해 담담히 싸움을 준비합니다.
그때 눈 닿는 구석구석이 얼마나 장하고 아름다울지..
칼의 노래의 탐미적 허무주의는 그렇게 탄생했을지 모릅니다.

현의 노래도 그렇습니다.
우륵의 가야금이란 소재를 통해, 위대한 소리도 한때 나왔다가 스러지는 찰나에 불과하고 생명 또한 그러함을 다양하게 보이고 있습니다.

인간의 싸움의 결과로 인간이 남기고 죽은 곡식과 그 자신의 육신으로 뭇 생명이 살지고 무심하게 무성해져 버린 과거 치열했던 전장의 묘사.
쥐가 두리번 거리는 모양새를 '이음도 없고 끊임도 없이, 온몸으로 집중하고 민첩하게 집중을 해체하는' 모양으로 관찰하는 것도 찰나의 아름다움에 천착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들었습니다.

그러기에 악기와 병장기가 다만 다르고 같다는 신기한 결론도 나오지요.

이러한 탐미의 극치는 글을 읽으며 온몸으로 장면을 느끼게 되는 총감각적 묘사입니다.
햇볕냄새, 미역냄새, 삭은 젖냄새 등 냄새에 대한 집착, 빛과 그림자에 대한 집요한 추적, 디테일한 소리와 냄새 그리고 그 습함까지 느낄 수 있는 필치는 앞에 말한 씹는 맛이 느껴지는 문체였습니다.

꿩과 암말이 교미하고, 개와 생선이 새끼를 치는 등 마르께스류의 환상은 개인적으로 뻑뻑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래도 신화와 역사의 경계가 아스라한 시대의 이야기니까 넘어갈만 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덕분에 세상 모든 사물의 냄새와 소리, 그 습함까지 주목하게 된 감수성에 감사하며
-by inu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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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꼭두각시 2011/04/19 16: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찰라의 미학" 이라는 말씀이 귀를 솔깃하게 합니다....늘 건강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