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전 스페인 안 좋아합니다. 아니 싫어했습니다. 저로선 별 관심 없는 변방의 유럽국가인데다가, 남아메리카에서 아즈텍과 잉카를 멸망시킬 때 저지른 패악질은 진저리나게 싫어합니다. 제국주의 시대에 휴머니즘 따위를 찾을 수야 없겠지만 스페인 정복자들은 유달리 잔혹하고 패륜적이었기 때문에, 저는 인류의 이름으로 용서할 수 없을 정도지요.
하지만 이번 출장길에 스페인에 대해 본격적으로 공부하면서 알게된 사실이 있습니다. 스페인도 철저한 변방국가의 서러움을 겪은 나라라는 점입니다. 이 부분은 역사를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카스티야의 이사벨 여왕과 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가 결혼을 통해 이베리아 반도를 통일한 후, 국토 재정복(레콩키스타, reconquista)에 성공합니다. 그리고 통일 스페인은 이사벨과 페르난도 2세의 딸, 광녀 후아나를 거쳐 손자 카를로스 1세에게 물려집니다. 합스부르크 증명이라도 하듯 합쭉이 유전자를 물려받은 카를로스 1세는, 막시밀리안 황제가 죽자, 우여곡절 끝에 신성로마제국을 통째로 물려받게 됩니다. 바로 로마의 황제로서는 카를로스 5세가 되지요. 이렇게 보면 결혼 잘해서 큰 제국을 아우른듯 하지만, 세상 그렇게 쉽지 않지요. 카를로스 5세는 스페인의 왕으로서 신성로마제국의 왕위를 물려받기 위해 막대한 돈을 씁니다. 또한 로마 황제가 된 후에도 제국을 유지하기 위해 스페인 국고를 물쓰듯 씁니다. 즉, 종교적 선명성과 정치적 목적을 강조하기 위해 스페인 돈으로 수많은 유럽의 전쟁을 치르고, 오스만족과도 싸우고 프랑스도 정벌합니다. 그럴수 밖에 없는게 카를로스 5세는 네덜란드에서 자란 '스페인어를 모르는 스페인 왕'이었기 때문이지요. 그의 관심은 친가인 독일, 그 다음에 자라난 플랑드르, 그리고 시간 남으면 자신의 본업인 스페인 순이었다고 합니다.
이 모든 돈을 댄게 스페인이고, 그 자금의 원천은 신대륙이었습니다. 스페인은, 신대륙에서 들어온 막대한 재화의 콩고물만 구경하고 고스란히 유럽 중심으로 수탈당한 셈이지요. 제 제목처럼 스페인은 숟가락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국물을 뜨지만 국물 맛을 모르는 숟가락.
이러고보면 스페인에 대해 일말의 동정심은 생깁니다. 그리고 복합적인 정서도 이해됩니다. 한때 세계 최대의 대국이었던 자존감, 그리고 외화내빈의 실존, 그럼에도 배만 들어오면 장터가 넘쳐나고 지갑이 두둑해지는 한탕 인생. 과도할 정도의 낙천성 그리고 케세라세라..
물론 스페인은 지역마다 정서가 다릅니다. 위의 진술은 세비야가 있던 안달루시아가 특히 해당하는 정서입니다만, 스페인 전반적으로 과거에 대한 향수는 있습니다.
이런 배경하에 굳이 찾아간 작은 마당입니다. 왕의 광장(Plaça del rei)이라는 이름의 이 작은 마당이 실은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고 돌아와 이사벨 여왕과 페르난도 2세를 알현한 곳이라고 합니다. 계단 위에 걸터앉아 바삐 걸어 팍팍한 다리를 쉬다보니, 스페인을 넘어 유럽과 아메리카의 운명을 바꾼 그 순간의 무게가 진하게 다가옵니다.
한가지 의문은, 왜 세비야가 아니고 바르셀로나일까였습니다. 유럽 온 국가에서 사기꾼 취급받던 콜럼버스는 두 차례 시도에서야 이사벨 여왕의 투자를 유치합니다. 그리고 세비야를 떠났지요. 신대륙의 모든 배들은 역시 세비야로 귀환했습니다.
바로 왕의 광장 옆에 붙어있는 아라곤 왕가입니다. 콜럼버스 벤처의 투자가인 이사벨 여왕은 남편 집에 머물렀었던거군요. 흔히 patio라고 불리우는 중정이 아름다운 집이었습니다.
그래서 콜럼버스는 바르셀로나로 실적보고를 왔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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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저도 퍽이나 관심 안가던 나라였는데 신혼여행지 물방 2위로 오른곳입니다.(언제갈꼬~) 전 가우디편이 궁금합니다. +_+
신혼여행 물망 2위라면.. 두번은 가셔야.. ;;;;
가우디 편 기대하세요. 빨리 글쓸게요. ^^
아하하핫. 숟가락..벌써 시간이 1년 넘게 흘렀네요. 그때도 그런 고민을 했나봅니다. 지금은 그때보단 낫지만 아직도 맛을 모르긴 마찬가지입니다. 비유하자면 온도센서가 달린 숟가락쯤 될까요. 크크크.
세비야..가보고 싶어요. (대항해시대하다보면 세비야는 꼭 가보고 싶어집니다. -_-) inuit님의 글을 읽으면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는다니까요. 크크크.
네. 시간 빨라요. 벌써 그렇군요..
그래도 진화하는 숟가락이라면 세월의 의미가 깊네요. ^^
전 원래 포르투갈 좋아해서 리스본이 모항이었는데 이래저래 세비야에서 많이 살았죠. ;;;
스페인.. 꼭 가보고 싶은 곳 중 하나예요.. 이태리-프랑스 해서 조만간 다녀보고 싶네요 ^^
스페인 남부가 정말 묻혀있는 보물이라던데..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먹고마시고 잘 노는 스페인이 남부, 안달루시아니까.. ^^
저도 그런 과거때문에 스페인이 막연히 안좋게만 보였는데..뭐..또 다르게 느껴지네요.~_~
전 스페인에 클럽(이비자!)랑 축구때문에 한번 가보고 싶은데..=_=;
덧. 혹시 개막전 보셨나요? 꽤나 괜찮았다는데
스페인 축구도 참 명물이지요.
개막전 전날 돌아왔습니다.. ;;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의 싸움도 볼만하죠~헤헤
맞습니다. 그 이야기도 곧 나올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