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멘토

Culture 2004/12/21 23:52


영화는 단기기억손실증인 남자의 이야기이다. 이 증상은 기억 상실증과는 다르게

사고 이전의 기억은 간직하고 있지만, 약 15분간 지속되는 초단기 기억을 제외하곤,

새로운 기억을 가질수 없는 증상인 것이다.


영화의 첫장면은 리버스 모션으로 주인공 레니가 한남자를 살해하는데서 시작한다.

그 후 영화는 주인공이 누군가와 통화하는 흑백장면과 컬러화면이 끊임없이 교차하면서

몇분씩 과거로 시간을 되돌린다. 시간의 역순으로 내레이션을 하는 것이 영화에서는 꽤나

낯선 기법이기도 하지만, 이보다 더 주인공의 상황을 잘 전달할 수도 있을까.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관객은 물론 주인공도(!) 만나는 사람, 주어진 상황 심지어는

현재의 위치에도 낯설어 하고 당황해 한다. (참고로 컬러화면은 시간의 역순으로 진행되고

흑백화면은 어느 특정 시점에서부터 순방향으로 흐르며 부가적인 정보를 제공한다.)

어느정도 시간이 흐르면, 관객은 그가 해결하려는 문제가 그의 사고와도 관련이 있는 아내의

살인범을 찾아 복수 하려는 것임을 알게 된다.

단기기억상실증을 제외하곤 지극히 합리적인 주인공은 자신의 상황을 인식하고 (기억하고가

아니다) 있으므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조기억장치를 사용한다.

무수한 메모지와, 주요인물에 대한 즉석사진, 사진에 붙은 간단한 커멘트들 그리고 주요정보는

자신의 몸에 문신을 하여 장기기억을 보존하지 못하는 문제를 보완한다.

시계의 바퀴를 거꾸로 돌릴때마다 주인공은 폴라로이드 사진과 메모, 그리고 문신을 조합해

상황을 분석하고 적절히 대처하며, 때론 상대를 속이기도 하는 영리함을 보인다.


영화속의 블랙유머하나.

레니는 거리를 열심히 뛰고 있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가 왜 뛰고 있지?'


저 편에 자신을 노려보며 같이 뛰는 남자를 발견한다.


'저자를 쫓는 게로군'


그에게 다가간다. 그러나 그자는 레니를 공격한다.


'웁스. 내가 쫓기는 거였군.'

영화속 진실은 끝에 가서야 실체를 드러내고, 그제서야 모든 복선이 정교한 퍼즐처럼 맞아

떨어지게 된다. 아마 이러한 반전은 식스센스에서 관객을 홀딱 속이는 대반전과는 다른류이며,

그 만족감은 오히려 식스센스를 능가하도록 교묘하다. 혹 안본이를 배려하여 반전은

이야기하지 않겠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몇가지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우선, 존재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우리의 자아를 규정하고 나를 구성하는 상당부분이 실은 나의 기억이란 사실. 물론 토탈리콜처럼

기억을 조작하는 소재의 영화도 있었지만, 메멘토는 보다 근원적으로 영화의 주인공처럼 기억을

대체하는 판단의 준거인 메모가 만일 조작되었거나 오류가 있는 경우 전혀 새로운 인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제시한다. 또한 인간이 기억을 받아들임에 있어 굳이 이기적이진 않더라도 취사선책을

하여 기억한다는것, 또는 기억이란것이 완전하지 않다는것 등 존재와 기억의 상관관계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든다. 비근한 예로, 우리는 얼마나 윤색된 기억을 갖고 사는가? 10년, 20년이

흐르면 스스로에게 잔인했던 첫사랑도 빛바랜 사진처럼 그저 가벼운 미소로 바라볼수 있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변하지 않는가? 또한 나이든 아저씨들이 젊음의 생채기인 군대시절을 용감하고 파란만장했던

푸르름으로 이야기하고 스스로도 그랬던것으로 세뇌되고 있기도 하고.


이것은 관객이 이영화를 접하는 두시간 동안에도 같은 메커니즘이 존재한다는데서 감독의 영리함이 엿보인다.


시간의 역순이라는 부자연스러운 서술에서 관객은 지속적으로 결과인 전장면으로 지금보는 장면을

해석해야하고, 관객 스스로의 과거기억을 가지고 재구성하는 시험에 들게된다. 물론 우리는 단기기억

손실증이 아니므로 크게 무리는 없지만 영화를 보고나면 대부분이 자기 기억의 불완전성은 인정할수

밖에 없게 된다.


메멘토.. 결코 팝콘을 들고 액션영화 보듯 설렁설렁 볼 수 있는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주말에 별다른 여행계획이 없는 사람이라면, 온방에 불꺼놓고 집중하면서 즐거운 지적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영화이다.

'Culture' 카테고리의 다른 글

Paper moon  (8) 2004/12/25
디지털 시대의 글쓰기  (13) 2004/12/23
메멘토  (0) 2004/12/21
크리에이티브의 길을 묻다  (0) 2004/12/20
로또에 관한 몇가지 생각  (13) 2004/12/19
미네르바 성냥갑  (6) 2004/12/13
Posted by Inuit

트랙백 주소 :: http://inuit.co.kr/trackback/181 관련글 쓰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