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은 아내의 생일이었습니다.
마음과 반대로, 감동 없이 외식 한번으로 때우게 되는 예년 생일이었습니다. 올해는 다르리라 굳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아이들과 깜짝 파티를 하기로 했습니다. 다행히 아내는 음력인 자기 생일을 모르는 눈치였습니다. 엄마를 속이는 사기대작전을 벌이기로 합니다.

범행 장소 물색
집에서 좀 벗어나야 좋겠지요. 마침 아이들 시험이라고 2주간 주말에 멀리 간적이 없습니다. 바람 쐴겸 강화도 여행이나 가자고 아내를 설득했습니다. 뭐 대단한일 했다고 그리 멀리 가냐고 타박은 했지만, 그리 큰 반대는 안합니다.

통신확보
이 부분이 제일 어렵습니다. 네 식구가 항상 붙어 지내고 이야기 많이 하는 관계로, 아이들과 저만 몰래 이야기하기 쉽지 않습니다. 특히, 세명이 모여 속닥거리면 나머지 한명은 꼭 따라 들어오니까요.
"뭐야 뭐야? 좋은 일있어?"
결국, 엄마가 잠든 틈에 새벽에 일어난다든지, 잠깐 가게 간 틈을 타서 비밀회동을 통해 모의를 진행했습니다.

역할분담
조달책: 아이들 (풍선, 편지 등 깜짝 파티 소품 준비) 아빠 (케익)
운반책: 물품을 각자 사물에 숨겨 범행장소 집결. 큰 물건은 차에 은닉
유인책: 당일, 아빠가 엄마 유인
범행장소설계: 아이들이 빈집에 장식 완료
자금책: 아빠 (실비 정산)

범행시뮬레이션
엄마 몰래 어떻게 소품을 준비하지?
우리가 시험 끝났으니까 바람 좀 쐬겠다고 엄마에게 부탁드릴게요. 마트에서 물건을 사 놓을게요.
어떻게 숨겨 들어오지?
주머니에 이렇게 이렇게 구겨서 들어오면 되요.
OK
케익은 어떻게 숨겨? 트렁크는 엄마가 짐 넣고 뺄 때 보이는데?
운전석 아래에 틈이 있어요. 거기에 모포로 감싸서 숨기면 되지요.
그렇구나.
당일은 말이지... 이런 대사를 하자꾸나.

얘들아 우리 모두 산책가자.
그냥 저희들 집에서 놀면 안되요? 닌텐도 하고 싶어요.
그래? 여보 애들 냅두고 우리끼리 데이트할까?
와아~ 고맙습니다~
그런데 아빠, 30분이면 우리 솜씨로 시간이 부족할듯 해요. 오시기 전에 다 못마치면 어떻게 하죠?
그렇구나. 그럼 아빠가 엄마 전화를 두고 갈게. 그리고 30분쯤 전화할게. '심심하니?' 물어볼거야. 준비가 다 되었으면, '심심해요.' 대답을 하고, 시간이 필요하면 '안 심심해요.' 대답을 해. 그럼 아빠가 알아서 시간을 끌게.
그러면 되겠구나.. ^_^

위기일발
아이들은 모의의 즐거움에 짜릿함을 느낍니다. 범행일까지 시간 기다리기가 너무 힘듭니다. 특히, 막내는 입이 근질거려 참지 못하는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엄마 생일이 언제야?"
(딸과 아빠는 경악)
엄마 안 보이게 눈짓, 손짓으로 어버버 입을 막느라 부산해집니다.

30초후
몰래 방으로 들어와서 조직의 쓴 맛을 보여줍니다. 아빠는 강하게 타이르고, 고문까지 합니다. 제일 괴로워하는 턱수염 부비부비 공격에 들어갔습니다. 아마, 이 후로도 더 이상 배신은 없을겁니다.

결과
대성공이었습니다.
사소한 어긋남이 있었지만, 철저한 사전 연습이 있었기에 차질없이 완벽히 맡은 역할들을 수행했습니다.
산책을 마치고 들어와보니, 벽면 가득한 풍선과 풍선마다 달아놓은 사랑의 편지들.. 긴 풍선으로 강아지도 만들고 오뚜기도 만들고..
그야말로 완전범죄였습니다. 엄마는 며칠전 쯤 생일이 여행과 겹치는건 알았지만, 생일 파티를 하는 여행인지는 몰랐습니다. 케익도 하나 없나 내심 섭섭했다 합니다. 하지만, 그 이상이 준비되어 있었지요.

이 정도, 사랑의 범죄는 용서받을만 하겠지요? ^^
자카르타: 완전범죄를 뜻하는 범죄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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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nu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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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컴속의 나 2008/11/02 22: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는 범죄 시나리오 잘 읽었습니다.
    글을 읽는 입장과는 달리 직접 범죄를 모의하는 과정에서는 박진감이 넘쳤겠어요. 재미와 보람도 있었겠구요^^ 사모님, 생일 축하드립니다^^

  2. mode 2008/11/02 22: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쁜 가족들이구나 싶습니다.
    그래서 비밀작전은 완전 대성공이었겠네요~

    초 부럽습니다. 전 제 생일을 잘 지켜서 스스로에게 케익과 ㅡ.ㅡ;;
    선물을 한다는.. 와핫핫핫~

  3. BlogIcon 양깡 2008/11/03 00: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포스팅은... 뭇 유부남들을 적으로 돌리시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

  4. BlogIcon 햅메이커 2008/11/03 01: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뭇 유부남들 뿐만이 아니라 인류의 절반을 적으로 돌리시는 건 아니신지...ㅎㅎ

    마냥 부럽습니다. 와이프에게는 점수따고 아이들에게는 가족의 의미를 알려주고...
    오늘 저녁은 굶으셔도 배부르실듯..(-0-

  5. BlogIcon 쿨짹 2008/11/03 08: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ㅋ 범행시뮬레이션을 읽는 제가 다 짜릿짜릿해지는군요. 너무 좋아하셨겠어요. ㅎㅎ 역시 멋지세요~

  6. BlogIcon 맑은독백 2008/11/03 12: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우 정말 유쾌한 가족입니다... :)
    윗분들 말대로 시뮬레이션에 짜릿함이 전해져오네요 ㅎㅎ

  7. 쁘렌 2008/11/03 13: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아~~ 행복한 생일 이벤트!! 나도 돌아 오는 울 딸래미 생일에 써프라이 함 해야겠어요.. 이제 알만한거 아는 나이라 넘 좋아 할 듯.. 늦었지만 언니 생일 축하하구요..

  8. BlogIcon 엘윙 2008/11/03 17: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재밌었겠는데요.
    몰래 준비하는 이벤트는 스릴 만점이죠. +_+
    아 배가 고픕니다.

    • BlogIcon inuit 2008/11/03 23:34  댓글주소  수정/삭제

      음.. 엘윙님 배고프단 소리에 강화도 사진은 특별히 no food 버전으로 갑니다.

      바베큐 사진, 밴댕이회 사진, 쑥튀김 사진 등등은 다 빼고 올렸습니다. ^^;

  9. BlogIcon kyoonjae 2008/11/03 18: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아...! 읽는 제 기분이 정말 좋아졌습니다^^

    • BlogIcon inuit 2008/11/03 23:34  댓글주소  수정/삭제

      애들과 준비과정이 정말 재미있었고, 아이들에게도 많이 배웠습니다.
      이만큼 컸구나 느낀점도 많았고.
      준비하는 제가 더 많이 받았던 그런 파티입니다. ^^

  10. BlogIcon SuJae 2008/11/04 12: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 아내 생일을 적는 란을 공란으로...
    뜨끔합니다.

  11. BlogIcon Mystories 2008/11/05 08: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눌님이 제가 자주 들르고 배움을 얻는 블로그가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만 아직까지 이곳을 방문한 적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영원히 못들어오게 막아야겠습니다. -_-;;

  12. BlogIcon 빙s 2008/11/12 23: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대단하세요~!
    부러워요~
    저도 나중에 저런 대접을 받고 싶네요...ㅋㅋㅋ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