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에 가면 꼭 가보려 마음 먹은 곳이 있었습니다.
마지막날 미팅이 취소되면서 비행기 타기 전까지 시간이 남아 주저없이 그 곳으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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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광장과 인민공원 사이에 있는 상해 도심계획 전시관입니다. 찾아보니 정식명칭은 上海城市规划展览馆  (Shanghai Urban Planning Exhibition Hall)이군요. 이 곳은 상하이의 원대한 꿈이 담겨있는 곳입니다. 상하이의 개발 로드맵이 나와 있으니까요.
상하이 시의 자부심과 의도가 곳곳에 묻어납니다.

들어가기 전에 에피소드가 있었습니다.
입장료가 30위안이라 100위안 짜리를 냈지요. 그랬더니 수납하는 여성이 다른 전시와 번들 표를 사라고 종용합니다. 40위안이면 미술 전시를 볼 수 있더군요.
잠깐 나선 자리라 시간이 없어 그냥 도시 계획만 보겠다고 했습니다.

별로 유쾌하지 않은 표정을 짓더니 20위안만 거슬러주고 의자를 돌리더군요.
뭐지? -_-a
100위안을 줬으니 70을 거슬러 달라고 했습니다. 그럴리가 없다고 되묻습니다. 100위안 줬다고 따지니 돈 통 뚜껑을 엽니다. 맨 위에 얌전히 있는 제 빨간 지폐. 미안하다며 50위안을 더 주긴 했습니다만, 단순한 실수로 보이진 않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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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엔 황푸강 양안의 개발 모형이 있습니다. 실제로 보면 장관입니다. 아직 계획중인 건물들은 투명 아크릴로 표시되어 있고, 완공된 건물은 흰 페인트로 칠해져 있습니다. 중국어로만 표시된 각 건물과 지역 태그가 무한한 호기심을 자극하더군요.

2층엔 간단한 상하이 초기 사진 등이 있지만, 진짜 탄성을 자아내는건 3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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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층 한가득, 둘레가 40미터 정도 되는 넓이에 상하이의 마스터 플랜이 모형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 규모가 어찌나 큰지 보면 숨이 턱 막힙니다. 손가락만한 건물이 실제 어떤 크기인지 잘 알기 때문에 저 넓이의 상하이가 어떨지 상상이 됩니다. 그 안의 사람들, 쌓인 돈, 배출하는 가스, 써대는 에너지, 태어나는 아이들, 마셔지는 술, 창출되는 비즈니스, 전해지는 지식의 양을 상상하면 그냥 가슴이 답답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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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 커서 사진에 담기지도 않지요. 위층으로 올라가면 항공사진처럼 조망은 가능합니다만 역시 똑딱이 카메라엔 안 담깁니다.
볼 책이 없으면 지도책만 갖고 한시간 동안 시간 가는줄 모르고 보는 저입니다. 3층 마스터 플랜 모형을 몇바퀴를 돌며 한참을 재미있게 봤습니다. 대형 스타디움만 두개, 교량 계획 등 눈에 띄는 장면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실패했던 상하이 도시의 모습은 여기에서야 머리에 들어왔지요. 가장 부족해 보이는건 녹지더군요. 푸동 동방명주 부근에 조금, 외곽 늪지 지역에 조금, 전반적으로 매우 답답한 느낌입니다. 도로도 부족해 보입니다. 황푸가 곡선이고 메인 도로들도 직선화 되기 힘든 지형으로 교통 체증을 어찌 해결할까 궁금합니다.

실제로 상하이 시민들은 이 곳을 즐겨 찾는다고 합니다. 2020년까지 도시의 미래를 구현해 놓았기 때문에, 어디가 어떻게 발전할지 상상하기가 쉽지요. 자기 동네가 어떤 위상을 갖는지 모습도 보이구요. 당연히 투기 또는 투자의 기초자료로 사용됩니다.

3층 마스터 플랜 옆에 가상체험관이 있는데 이게 또 걸작입니다. 360도 스크린으로 미래의 상해 모습을 보여주는데 속도감에 현기증이 느껴질 정도로 잘 만들어졌습니다. 대전 과학엑스포에 있는 꿈돌이 공원보다는 훨씬 수준이 높습니다.
상해의 현안은 2010년 엑스포입니다. 그 때까지 도심의 주요 단지를 완성하여 엑스포 이후 도약을 꿈꾸는 걸로 보입니다. 저만 서울과 비교하지, 상하이가 벤치마킹을 표방하는 도시는 파리, 뉴욕, 도쿄 등이지요.

이 곳엔 도심의 계획만 있는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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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층에 올라가면 항만 허브 계획이 보입니다. 연안의 두개 섬을 다리로 연결하여 심해 항만으로 만드는 구상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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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동 공항은 이미 유명한 상태구요.
이 밖에도, 철도, 교통 등의 계획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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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의 황푸강 연안, 3층의 도심, 그리고 광역 상하이를 지나, 남경-상해-항주를 잇는 장강 델타 계획까지 보여줍니다.

제가 놀란건 스케일보다 한 세대의 로드맵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점입니다.
중간에 수정이 있을지언정, 이렇게 가겠다는 명확한 구성은 시민들의 미래가시성을 높여줍니다. 현실의 어려움도 보다 잘 견디겠지요.

하지만 공산당 방식의 선전선동이 아니라, 실행을 자성적으로 예언하는 기업형 로드맵이란 생각에 감탄을 했습니다.

상하이는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닙니다.
서울/메트로 지역은 5년 후면 어떤 모습을 할까요. 상하이에 비해 몇 개 핵심 부문의 우위를 가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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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20년전만 되었어도 으시시하고 음산했을 인민광장입니다.
여의도보다 더 활력이 넘쳤습니다.

저는 이번 출장이 개인적으로 갖고 있던 중국에 대한 가설을 많이 수정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비행 속도가 소리의 속도인 음속에 다다르면 마하 장벽(Mach barrier)이 생깁니다. 마찬가지로 변화가 급속하면 돌파하기 힘든 장벽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힘들게 그 장벽을 통과했고 시민사회를 이뤘습니다. 얼마 전까지 중국은 아음속(subsonic) 상태였습니다. 저는 초음속(supersonic) 돌파 시점의 진통을 예상했는데 이미 중국은 음속 돌파의 과정이더군요. 천음속(transonic)이라고 하지요. 물론 아직 중국은 초음속으로 완전히 진입하진 않았습니다.

그러나, 초음속 돌파의 주요 인자인 엔진과 구조물의 강도 측면에서 중국은 하드웨어를 갖췄다고 판단합니다. 세계의 공장 역할로 벌어들인 경제력과, 자본주의의 장점을 수용한 인프라라는 측면에서 말입니다.
남은 관건은 파일럿의 조종 실력입니다. 아니, 조종술도 큰 의미가 없습니다. 사실, 쉽게 초음속으로 진입하건, 돌파 실패로 공중분해되건 어느 결과도 우리에겐 도움이 안되니 말입니다. 중국이 이미 가속을 시작한 이상 바라는 구체적 실체도 없이 구경만 해야하는 입장일 뿐입니다.

놀랍도록 우리의 과거를 닮은 중국의 현재입니다.
그 현기증 나는 속도에 기업에서 경영하는 저는 가슴이 답답합니다.
온 나라의 역량을 결집해 나갈 준비가 부족하기 때문이지요.

사실 민간부문의 역량은 세계 어디가서 지지 않는다고 자부합니다.
교육과 주택 제도 등 인프라가 역량 소모적인 측면이 강합니다.
그냥 안되면 읊어대는 상투적 정치 탓이 아닙니다.
눈돌아가는 세계 무대를 보며 조종간을 잡아줄 정치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대운하로 대변되는 비생산적인 논쟁이나, 구분도 안가는 진보니 보수니 다 염증을 느낄 뿐입니다.
우리는 좋은 정치시스템을 가질 자격이 없는건가요?

상하이 편은 여기서 마칩니다.
그동안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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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nu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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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승자독식 관점으로 본 우리나라 양극화 문제

    Tracked from Inuit Blogged 2008/05/24 12:45  삭제

    몇 가지 간단한 화두로 오늘의 이야기를 시작해 봅니다. 1. 왜 우리나라 대학의 등록금이 갑자기 비싸졌을까요? 2. 일본의 맥주 명인 에비하라 씨와 Alex Rodriguez는 자기 분야의 기예를 최고로 이룬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한 명은 평생 고생 끝에 은퇴를 했고, 다른 한 명은 연봉이 하위 구단 전체 연봉에 필적합니다. 왜 그럴까요? 3. 영화 마케팅과 서울대 유명세의 공통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4. 미국 CEO의 연봉이 (우리나라 등과는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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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쉐아르 2008/04/12 13: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inuit님의 글을 읽으며 ... 저도 같은 답답함을 느낍니다. 비인간적이라 욕을 먹지만, 어쨋든 나라를 한방향으로 몰고가는 중국을 보면서, 그 변화의 모습을 옆에 서서 지켜만 봐야하는 한국의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좋고 싫고, 옳고 그르고와 상관없이 일어나는 일들이 있습니다. 원하든 원치않든 마주 대해 내편의 이익을 챙겨야하지요. 한국에게 중국은 그런 나라가 아닌가 합니다. 소모적 논쟁을 넘어 나라의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좋은 지도자가 정말 아쉽습니다.

    그런데 상하이의 2020년의 모습... 정말 엄청나군요. 저 정도라면 비행기를 타고 위에 지나가며 보는 것만으로도 압도 당할 것 같습니다.

  2. BlogIcon 오픈검색 2008/04/12 21: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번의 여행에서 이렇게 많은 내용을 담아 내시다니 정말 잘 읽었습니다.
    상해의 과거 현재 미래를 한번에 읽은 느낌입니다^^

    미래의 아시아는 도쿄-서울-상해로 이어지는 그런 세상으로 발전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만 현실은 갈수록 안 좋은 방향으로 가는 느낌이군요.

    한국인 개개인의 뛰어난 능력이 조화롭게 융합하여 발전해 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BlogIcon inuit 2008/04/13 11:06  댓글주소  수정/삭제

      짧은 식견을 드러내는게 얼마나 우스운지 잘 압니다.
      그러나, 제 고민과 생각을 적어가면서 생각을 정리해나가는게 블로그라고 생각해서 미숙을 기록했습니다.

      말씀처럼 한-중-일이 협력하면, 또는 동아시아권으로 경제블록을 형성하면 그 효과가 매우 클텐데 각자 감정적 골도 깊고, 이해타산도 다른 면이 있어서 안타깝네요.
      문제는, 시일이 지날수록 우리는 주도권이 약해진다는 사실이죠.

  3. mode 2008/04/13 14: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 생각은요. 좋은 정치시스템도 필요하고요, 또 더 중요한것으로 휴머니즘시스템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내가 산 물건이 엉터리면 화가나도 내가 팔땐 전혀 안그러잖아요. 정치시스템도 그런 맥락이 아닌가 싶습니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는 아주 다름에도 불구하고 제가보는 관점에서는 이기주의가 우리나라가 지금까지 이룩한 눈물나는 인프라를 상처입히고 있는것 같습니다.
    나를 위한 정치, 내 가족을 위한 정치, 내가 잘살기 위한 정치 그리고 나를 위한, 내가족을 위한, 내가 잘살기 위한 경제는 단절의시스템이고 결국 과거가 초음속이었던 말던 추락밖에 남지 않게 될것이라 생각합니다. ㅠㅠ 우앙~ 슬퍼요!!

    • BlogIcon inuit 2008/04/13 23:09  댓글주소  수정/삭제

      시스템적 문제도 작용하겠지요.
      응징과 보상이 적절하지 않으면 이기적인 사람이 이득을 취하겠지요.
      우리나라에 대한 제 믿음은, 건강성을 유지하는 능력입니다.
      다만 타이밍을 놓치면 따라가기가 버겁겠지요.
      그래서 마음이 급한 면도 있어요.

  4. BlogIcon 엘윙 2008/04/13 22: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많은 생각을 하게 되네요. 정치에 관심을 가질수록 마음이 답답해지고 답이 나오지 않더군요. 그냥 외면하고 모르는 척 하는 것이 오히려 편합니다. 무식해서 그렇죠. -_ㅜ
    그나저나 무섭네요. 중국.. 저렇게 엄청나게 성장하고 있는데, 그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저런 수준이라니 말입니다. inuit님의 돈을 삥땅쳐서 뭘 하려고 했던걸까요. 여튼 무섭습니다. 중국.

    • BlogIcon inuit 2008/04/13 23: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다 그래요.
      무식해서가 아니라, 무력해서 그렇습니다.

      50위안이면 우리돈으로 7천원이라 작은 돈은 아닙니다.
      게다가 농촌에서 상하이로 허가없이 이주해서 비정상적으로 일하는 여성 '이주 노동자'의 한달 수입이 $40정도랍니다.
      50위안이면 나름 큰 돈이죠.

  5. BlogIcon 이승환 2008/04/14 14: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뭔가 전선에 서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글입니다. 언제나 설 수 있을지 -_-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