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신간이 나왔다는 소문을 들을 때부터, 미식을 탐하듯 욕심을 내었습니다.
게다가 남한산성은 제게서 멀지 않아 몇 번이나 들렀던 곳입니다. 갈 때마다 높은 산에 오목하게 담긴 성터 마을과 단단한 옹벽, 동서남북의 장대 그리고 왕의 피난처인 행궁을 봅니다. 건물의 자리와 무게 그리고 대립에서 피어날 법한 스토리가 많을 법 했습니다. 갈증같은 궁금증을, 글맛에 주리던 김훈 선생이 글로 풀었지요.
병자호란 때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신하였다가 결국 청의 황제 앞에서 3배9고두례를 한 '삼전도의 굴욕'까지의 긴박했던 시간을 적은 이야기입니다. 그전 '칼의 노래'에서의 농밀한 심리묘사, '현의 노래'에서의 찰나적 공감각과는 조금 달라졌습니다. 정치적 묘사가 탁월합니다. 관계와 관계가 얽힙니다.
제가 가장 충격을 받은 부분은 여기입니다. 청의 황제가 조선왕에게 외교적 수사를 배제하고 담백하게 통첩합니다. 기억나는대로 요약하면 이런 톤입니다.
내 좋게 말하니, 왕자와 신하를 내게 보내 나에게 승복하라. 때가 되면 아름다운 날에 좋은 옷을 입혀 돌려보내리라. 물론 지금 이런 결정이 두려우리란 사실을 나는 안다. 하지만, 조그만 나라의 왕으로서 진짜 큰 두려움이 무엇인지 알것이라 생각한다. 작은 두려움을 두려워해 큰 두려움을 부르지 말라.
역사의 문장인지 작가의 작문인지 알지 못합니다만, 여진 오랑캐에서 청의 황제가 된 칸과 왕과의 관계를 명징하게 드러내는 글이었습니다.
결국 책을 읽고 나면, 과연 왕이란게 무엇인가 곰곰 생각하게 됩니다.
산에서의 농성은 왕의 보조적 권위가 제거된 상황입니다. 추위와 굶주림에 말먹일 걱정, 보초 세울 걱정이 현안이 됩니다. 예(禮)는 상황 개선에 도움이 되기는 커녕 걸림돌이 됩니다. 그리고 정치는 계속 남아 말과 말이 얽히기만 하지요. 어차피 항복할 상황이라면 좀더 편해보려는 성안 군병과 백성의 마음도 무시할 일은 아닙니다.
뜻이 지면 모두를 잃는다는 유학의 정화인 조선에서, 물리로 이기지 않고 뜻을 꺾고 가려하는 칸은 그의 예정을 이뤘습니다. 그러나 칸이나 왕이나 역사에 보면 찰나일 뿐, 이 땅의 백성들은 또 농사를 짓고 새끼를 낳고 그렇게 무상히 살아갔겠지요.
겨울의 길목, 남한산성, 2004 Nove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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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김훈, 남한산성을 읽고 (건조한 문장 속의 처절함)
Tracked from 글로 그림 그리는 산골소년 2007/06/09 22:06 삭제고개가 갸우뚱 거렸다. ‘칼의노래’와 ‘개(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 처럼 글이 쉽게 읽히지 않았다. 김훈 작가의 글이라면 그 시대 그 상황에 그림같이 빠져들게 하는 경험을 해주는데 이 글은 일반 소설책처럼 건조하게 읽혔다. 그러나 책을 덮은 지금 이 책의 슬픈 여운이 ‘처절하게’ 와 닿았다. 나의 몸속 깊은 곳에서 열등감과 게으름과 들키고 싶지 않은 치부들을 바늘로 사정없이 찌른다. 나는 감추고자 했던 어둠을 들춰주는 이 책이 창피하면서도 고마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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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치욕의 한계, 삶의 한계, 남한산성
Tracked from 격물치지 [格物致知] 2008/05/12 10:50 삭제대학 가장 위대한 책중 하나인 대학에는 '머물 데를 알아야 정함이 있고, 정한 뒤에야 고요해 지고, 고요한 뒤에야 편안해지고, 편안해져야 사려할 수 있고, 사려를 해야 능히 얻는다.'라는 문장이 있다. 그렇다. 모든 처세, 성공학, 자기개발 책의 가장 중요한 핵심을 2,500년전 동양의 선철들은 깨달았다. 모든 것은 머물 자리가 있고 그 자리에 있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즉 모든 사물의 理에 머물러야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知止而后有定 定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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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남한산성 - 난해한 나라 조선을 이야기하다
Tracked from Future Shaper ! 2008/09/29 13:10 삭제난해한 나라로구나... 갇혀있는 조선의 국왕이 죽어가는 나라 명을 향해 춤으로 예를 올림을 보며 칸은 말했다. 스스로 강자의 적이 되는 처연하고 강개한 자리에서 돌연 아무런 적대행위도 하지 않는 그 적막을 칸은 이해할 수 없었다. 친구는 아니였지만, 적으로 만들 필요도 없었던 청을 조선은 굳이 적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칸을 이 후미진 땅으로 불러들였다. 조선에 올 때는 시원한 싸움이라도 한판 기대했건만, 남한 산성에 도착할 때까지 저항도 환영도 없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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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글의 날(김훈)
Tracked from adayof...Homo-Babience 2009/06/23 16:50 삭제그의 글에는 삼엄함이 있다. 범접할 수 없는 그의 글을 몇차례 만나기는 했어도 남한산성에서 보여 준 그 살벌함은 무엇일까? 바로 파랗게 벼려진 날 그것이다. 살길과 죽을 길은 포개져 있다. 남한산성 기행 중에서 주전파의 말은 실천 불가능한 정의였고, 주화파의 말은 실천 가능한 치욕이었다. ...전략> 남한산성 서문의 치욕과 고통을 성찰하는 일은, 죽을 수도 살 수도 없는 세상에서 그러나 죽을 수 없는 삶의 고통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아마도 받아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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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타향에 머물다보니 이런 좋은 신간들을 재깍재깍 챙겨볼 수 없어 아쉽습니다. 올여름 귀국하면 읽을 책 목록에 올려두어야 겠네요.
글실력 뿐 아니라 사진실력도 좋으시네요. 제가 요즘 사진에 한창 취미를 붙이고 있는 중입니다^^
라띠님 요즘 좀 소강이십니다. 불꽃 포스팅의 기억이 멀지 않은데 말입니다. ^^
저도 사진을 좋아는 하는데, 게으른 성격과 맞지 않는 취미란 생각을 합니다. ^^;
한국 문학 최고의 스타일리스트로 최고의 글맛을 자랑하는 작가 김훈. 라는 말 동감합니다.
그의 어휘력과 수사는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어휘력이 부족했던 탓인지 김훈의 책을 읽으려면
항상 사전을 끼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신간을 냈다니 저도 군침도는군요~
남한산성은 낱말이 더욱 어렵더군요. 그래도 현의 노래 때 아쉬움을 커버하는 글맛이 있습니다. ^^
음...칼의 노래를 읽었는데, 한국 떠날때 꼭 하나 챙겨서 가야겠어요. 지금은 저 말고도 워낙 많은 분들이 남한산성을 보고 있어서^^ 조금 열기가 식으면 읽고 싶네요.
하하 유행에 편승하기를 많이 싫어하시나 봅니다.
제일 좋은 타이밍은, 남한산성 가실 일 있기 직전이 책읽기 좋은 시점입니다. ^^
오옷..우리 꾸꾸에게 이 책도 권해줘야겠군요.
음 책 읽고 남한산성에 가보면 어떨까 싶군요. (아직 남한산성에도 안가본 촌 사람이에요 -_ㅜ)
남한산성이 촌에 있으니 꼭 촌사람이라고 하기 그렇지요. 물론 자세히 따지면 엘윙님이 불리하겠지만. ^^
꾸꾸님하고 읽고 같이 남한산성 가보세요. 유원지에서 올라가도 높지 않은 길이고, 차로 산성까지 바로 가서 가볍게 산책도 가능합니다.
안녕하세요~ 항상 RSS구독만 하다가 남한산성 책을 읽으셨다길래
제가 쓴 남한산성 리뷰를 트랙백 걸었습니다~
저는 정말 김훈선생님의 팬이거든요..그분의 글맛 대단하죠~!
그럼 즐거운 주말보내세요 ^^
트랙백 고맙습니다. 그리고 커밍아웃도.. 하하 ^^
마침 얼마전에 남한산성을 올랐습니다. 바로 지척에 있는 곳인데 가보자..하면서도 1년만에 행동으로 옮겼죠.
이 책도 한번 읽어봐야지! 했는데, 과연 언제 읽게 될런지^^;;
이누잇님의 뽐뿌로 인해 다소 빨리 읽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소설이라 금방 읽힙니다. 저는 김훈 작가의 소설은 꼭꼭 씹어 읽는데, 그래도 뒤가 얇아질수록 아쉬움이 커질정도의 분량이지요.
'칼의 노래'와 '현의 노래' 두 권의 책을 읽고 '남한산성'은 대기중입니다만..
김훈 선생님의 글은 역사 그 자체보다는
그 역사를 살아낸 이를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앞 선 두 책에서는 마초적인 느낌도 느낄 수 있었구요.
아마도 우리네 역사가 남성 중심적이었기 때문이겠지요.
저도 지금 읽는 책 얼렁 끝내고 '남한산성' 읽어야 겠습니다. ^^;
네 주로 현미경적 시각이 돋보이지요. 남한산성은 좀 역사의식이 좀더 부각된 느낌입니다.
남한산성은 소설 광릉숲과 함께 읽으면 좋습니다.
멸만흥한의 손문의 쿠테타를 신해변란으로 정의하며
우리 대한겨레의 역사와 문화를 찾아 떠나는 소설입니다.
좋은 책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쓰고 검색해보니 김창호님의 작품이군요. ^^)
비밀댓글입니다
관심 고맙습니다.
제안하신 내용은 별로 내키지가 않네요. 양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훈이 어빠의 '칼의 노래'를 읽고 구수한 그의 필력에 끌려..
'개'라는 그의 소설을 읽었습니다만..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었죠..
훈이 어빠는 아무래도 역사를 재조명하는 부분에서 자신의 진가를 발휘하는 작가가 아닌가 합니다..
'남한산성'도 조만간 읽어보려고 합니다..
그나저나 오늘 제 의사결정에 대해 회사에서 친한분들께 먼저 공표를 했는데..
2번째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런 일은 부담이 되는군요..
이달까지 현재 진행되는 일 마무리하기로 하였으니..
정리되는 대로 한 번 더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칼의 노래가 정녕 구수하단 말이냐. 난 알싸하던데.
드디어 한발을 내딛는구나. 행운을 빈다. ^^
저는 왠지 처음부터 끝까지 답답한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지금의 현실이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제 서평에 그런 마음이 담겨있습니다.
이번에도 서평을 김훈의 문체를 흉내내어 적었습니다. 그런데 지난번 칼의 노래보다도 어렵네요. 더 이상 흉내내지 말아야겠습니다.
네. 살면서 문득문득 유사한 상황을 봅니다.
전 '남한산성 조정'이라고 부릅니다.
말만 무성하고, 허울만 논하는..
트랙백 곧 가서 보겠습니다. ^^
이제사 이 책을 봤어요. ^^
김훈 책은 처음이라 몰랐는데 참 독특한 스타일을 구사하시더라구요. 몹시 샘날 정도로요. ;)
사람은 논외로 치더라도, 그의 문체는 정말 독특하죠.
그야말로 스타일리스트. ^^